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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카만으로도 만족하던 시절.. 이후에는 필요성을 통감.. 휴대성을 강조해 올림푸스의 E410을 쓰고 있었슴.

업무용으로 쓰일 DSLR을 고르다 나름대로 가격도 괜찮고 성능까지 기대하게 만드는 알파 380을 주문후에 어제 도착..
좀더 세부적인 부분은 쓰다보면 알겠지만 소니의 DSLR 카메라는 올림푸스의 기본렌즈를 끼고 촬영한 사진보다는 노란색조가 가미된듯한 결과물.. 스펙상으로 소니기종이 더나은편이고 자동상태에서 실제 촬영 결과물도 괜찮은것으로 보입니다.

어제와 오늘 집근처에서 촬영.. ㅋ 촬영 솜씨가 엉망이라..(별다른 수정없이 사이즈만 줄임)

집근처 라스베가스 공원.. 자전거 타는 우리 아이..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놀이 하던 성호공원 이익선생 기념관 뒤쪽 분수대.


안산 식물원 접사.
한여름이라 그런지 꽃들이 별로없고 약간 기운을 잃은 식물들..

아이안텀 (물에 젖지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코르딜리네 아이치아카


호랑가시나무 (이성복의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읽으며 상상하던 것인데 이렇게 생겼슴)


눈에 띄게 이쁜 꽃이 피어 자세히 보았습니다.
아스킬레피아스 쿠라싸비카 (이름이 어렵네요..)



정확한 꽃명을 확인못했는데 국화...


마구잡이로 휘둘렀는데 그럭저럭 괜찮은듯.. 앞으로 재미있는 사진을 많이 찍을것을 생각하면서..
자세한 스펙이나 기기 특성은 다음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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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있으면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이 치뤄지겠네요..
우리나라는 케이블 채널인 TVN에서 생중계 해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나누어주던 슈퍼스타라는 말을 실감하게된 그의 죽음입니다.
슈퍼스타란것은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합치되고 극대화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합니다.
죽음까지도 안타까움이라는 마음속에 무늬들이 새겨질정도이네요... 그의 급작스런 죽음이 가져다준 것일지도..

중학생시절 팝음악이라는 것에 눈뜨고 몰입이라고할수 있는 시점에 최고의 자리에는 마이클잭슨이 있었습니다.
그의 전설적인 앨범 아니 팝음악을 통틀어도 마찬가지인 Thriller가 전세계를 휩쓸고 다니던 시절 1983년 즈음...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것들...
90년대 들어서면서 그는 안좋은 이미지들이 지속적으로 돌출되었고 현재는 많은부분이 억울하다 할 수 있는 것들로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네요.. 90년대 부터는 팝음악과 멀어지는 시기라 그다지 흥미도 없었고...

그의 사망을 기점으로 MBC의 특집이나 쿡TV 나 TVN같은 케이블 방송까지 여러차례 당시에도 봐왔던 뮤직비디오들을 다시 보거나 무대 라이브를 보면서 추억속을 헤맴과 동시에 그의 철저한 프로정신에 찬사가 나오기도... 지금봐도 유치하지 않은 그의 뮤직비디오와 라이브에 묻어나오는 철저함이 보입니다.

중학생시절 리어커판 마이클잭슨 카세트 테잎 속에서 듣던 곡 가운데 하나..
어린시절의 마이클 잭슨의 ben

Michael Jackson - Ben - live - 1972

집에 뭐가있을가 생각해봤더니 잭슨파이브 시절부터 스릴러에 수록된 곡까지 망라된 해적판 테잎과
1987년 bad가 나왔을때는 바로 구입한것... 그리고 90년대 중반에 나온 히스토리 VHS...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클립 몇개(웹으로 본것중에 괜찮은 화질에 속하는편.. )

http://myplay.com/video-player/michael-jackson

마이클잭슨 공식 웹사이트



마이클잭슨 사망2일전 리허설 모습

미국 NBC 영결식 전체 중계 장면(전후로 3시간 가까이 되네요)

http://www.msnbc.msn.com/id/21134540/vp/31784611#31782901

하늘에서도 노래 부르고 춤을출 마이클 잭슨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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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4-5학년 시절 계몽사에서 나왔던 세계의 탐험가란 책을 양장본 겉표지가 닳도록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별도의 위인전으로 읽기도 했던 아문센과 지금 주인공 바렌츠입니다.

그당시 상상의 나래는 바렌츠는 아문센과 비슷한 시대의 인물로 착각했다는 점(둘사이에는 300년 이상의 시공간 차이가 납니다. 바렌츠는 1597년 스발바르 - 스피츠베르겐-를 탐사하다 빙하에 배가 걸렸고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노바야젬라군도에 내린후 일주일만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책에서는 바렌츠의 일기가 발견되었다는 점이 상당히 부각되었었는데 역사적인 의미가 아닌 실제적인 자료로서의 가치는 어떨까?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현재의 바렌츠해는 어류와 각종 자원의 보고이고 간간히 뉴스에 비치는 것은 러시아의 핵관련 사고가 나옵니다.


탐사중인 바렌츠 일행


그림으로 구성한 바렌츠의 탐험(3차 탐험)






숨을 거두는 바렌츠












바렌츠 지도




바렌츠해 주변지도


바렌츠해에 있는 섬들..












POLAR LOW - 바닷가의 폭풍인듯.. 바렌츠해에서 발생한 사진 1987년


네덜란드 기념주화인듯..


바렌츠가 마지막으로 일기를 쓰다 죽어간 곳 노바야젬라
이곳은 러시아의 핵실험이 많이 있었었고 핵잠수함의 사고등 여러가지 기록들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노바야 젬라섬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랍니다.


서핑하다 우연히 발견 - http://blog.naver.com/ati68/150035748750


사진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Special:Search?search=Barents&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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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말로 초딩.. 국민학교 다닐시절 내 마음속의 최고의 영웅은 남극점을 최초로 정복한 아문센이었다.

의대 다니다 때려치고 하급 선원부터 시작했고 어릴때는 그린란드를 최초로 횡단한 역시나 매우 특이한 인생을 살아온 탐험가이자 후일 국제 난민 구제의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난센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북극점을 미국의 피어리가 정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돌려 나중에는 남극점을 인류최초로 정복하기도 합니다. 당시 영국 탐험대인 스코트와의 경쟁이 유명하기도 했답니다.

아문센은 개를 이용했고 스코트는 시베리아산 말을 이용하기도...
당시 읽었던 것중에 식량부족으로 개를 버리는 아문센 일행과 역시 식량이 없어 말을 잡아먹는 스콧 일행이 나오기도 했는데 사실유무는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어린시절 몇권의 위인전에서 접했던 아문센은 오로라만큼 영롱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차츰 잊혀지다 영하 삼십도를 오르내리는 철책에서 갑자기 떠오른적이 있습니다.. 위인전에서 읽은 것은 아문센은 체력단련을 위해 군대에 자원한다고 나왔었는데 시력때문에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건장한 체격에 승낙이 되었다고 묘사되기도...

후일 아문센은 북극을 비행선으로 횡단하기도 하고..
항로를 개척하기도하고..
한때 동료이기도 했던 이탈리아의 노빌레가 실종되었을때 찾아나서다 실종..
현재 밝혀진 것은 비행선 충돌로 인해 북극에서 죽은것으로 결론.


로알 엥엘브렉트 그라브닝 아문센(Roald Engelbregt Gravning Amundsen) - 처음 들어보는 그의 풀네임
위키백과 요약정보

또다른시선 - 경향닷컴: [지구보다 큰지도](20) 남극의 영웅들-혹한의 땅에 타오른 정복의 열정


남극까지 타고갔던 프람(fram)호 - 난센이 탐험에 사용했던 선박을 받아서 항해

북극항로 개척시에 사용한 아이아호

남극점




얼음위 .. 이 사진은 어릴때 위인전에서 본듯..


러시아 주화에 나온 아문센 .. 선박과 비행선등등







남극점에 있는 아문센-스콧 스테이션




노르웨이 스피츠베르겐에 있는 아문센 동상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http://commons.wikimedia.org/wiki/Roald_Amundsen

이번주말에 도서관 가면 아문센과 난센에 관한 서적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어릴때 위인전 표지에 있던 사진은 안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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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그림주고 받았던 유기농 귤들이 허연 당분들을 드러내더니 몇몇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박스는 이곳저곳 나눠주고 한박스를 먹고 있었는데 이런이런...
안되겠다 싶어 남아있던것중에 3분에2 정도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올해 두번째로 잼을 만들었습니다.
먼저번에도 귤로 잼을 만들었었는데 그당시의 잼은 상당히 신맛이 많이 났습니다.
물론 설탕을 많이 넣었음에도....

어릴때 어머니는 오이나 당근으로도 잼을 만들어주곤 했었습니다. 이녀석을 크래커에 발라먹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학교시절 학교에 이걸 가져갔다가 무슨 오이로 잼을 만드냐며 놀려대는 친한 친구때문에 다시는 들고가지 않았었습니다.
아! 갑자기 이녀석이 생각나는군요.. 조금은 불우한 환경이었던 친구는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아에 가까웠는데(뻑하면 가출해서 학교에 안오곤했으니까요..대부분이 지각만해도 큰일나는것처럼 호들갑떨던 시절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주번이 학교문앞에 버티고 있었고 이름적는게 왜이리 두려운지 가끔 복장불량이다 혹은 교실돌다 떠들었다면서 이름을 수첩에 적어갈때면 선생님에게 혼날까봐 전전긍긍하던때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6학년이 되어 주번을 할때는 여동생 교실로 들어가 매일 약올린다면서 혼내주라던 남학생 앞에서 어깨 두들기며 한번 씨익 웃고나왔던 기억도 납니다...박통이 비명에 갔을때에는 TV에서 한동안 만화는 안나오고 이상한 것들만 잔뜩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는 전두환 시절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표어처럼 떠오르는 구절들 청탁배격등등.. 학교에서 지금은 고인이된 이주일 흉내를 꽤냈었지요 한참 잘나갈때 저질이라는 이유로 철퇴를 맞기도 했었습니다... 당시에 아현동 외사촌형집에 놀러갔다 런닝중이던 황충재선수를 보고 뒤쫓아가면서 흥분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복싱은 지금의 효도르나 최홍만 혹은 레미 본야스키정도의 선수들도 왠지 왜소해(?) 보일 정도의 엄청난 국민적 열기였습니다.(K-1이 케이블TV를 통해 방송되고 있다면 당시의 복싱은 공중파에서 실시간 위성중계 혹은 많은 주목속에 녹화방송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과는 물론 미디어의 상황이 다르긴 했지만 관심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폭발적이었습니다)

헤글러, 레너드, 헌즈, 두란 부터 개인적으로 기억에 제일 강하게 남은 김상현과 경기하던 아론프라이어.. 대단원을 마무리한 타이슨의 등장까지

830402 Aaron Pryor vs. Kim Sang-Hyun


- 아론프라이어와 김상현의 눈싸움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83년이면 중학생시절이네요. 기억이란 참으로 믿을만한것이 못되는군요.. 제기억에 아론프라이어는 김상현의 허리를 살짝 넘는 키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영상보다 더 짧았었고.. TV로 봤기 때문에 이영상보다 디테일과 분위기가 더 강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기억에 김상현 선수는 챔피언을 이전에 지냈었고 재도전이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상당히 많은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막을 보니 한살차이네요. 키는 김상현이 큰데 리치와 몸무게는 아론프라이어가 더많이 나가네요. 어릴때 기억으로는 무쇠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봐도 여전하네요 흡사 동물원에서 봤던 검은색 퓨마와 같습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안절부절하던.. 과천에서 촬영한게 있을텐데 찾아봐야겠네요... 당시의 대부분 전문가들도 김상현이 이기리라는 예상보다 아론프라이어와 경기한다는점에 초점을 맞췄었고 적지인지라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제기량을 발휘했어도 승리까지 예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미국에만가면 맥을 못추던 우리나라 복서들이었습니다. 김상현도 우리나라 복싱 전성기를 장식했던 챔피언가운데 한명인데 아론프라이어는 복싱사에서 주요인물로 거론될 정도로 워낙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

아론프라이어 대 토머스헌즈 (아마추어 시절)



이친구에게는 볼펜에다 비닐을 끼워서 풀피리비슷하게 부는법을 배웠는데 한때 교실에서 유행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던 기억이 납니다.)

4학년 때부터 졸업할때까지 같은반이었는데 학교에 나온날과 안나온날이 비슷할정도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녀석 덕분에 롤러스케이트타러 다니던 6학년때가 기억납니다. 그당시에 아마 단체로 몰려가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겨울철마다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탔던 덕분인지 별도로 배울 필요도 없었는데 처음에는 꽈당꽈당 넘어지던 친구들 붙잡아주기 바빴었습니다. 이친구는 거의 선수였습니다. 갖가지 기교를 다부려가면 타던 기억이 납니다. 후일 중학생 시절에 길거리에서 그리고 롤러장에서 한두번 마주치기는 했었는데 지금은 뭐하는지 궁금하네요... 들리는 소문에는 학교를 그만뒀다던 이야기도 들었었고.. 이친구에게 받았던 선물중에서 동그란 아크릴판에 글자를 새겨넣은 명찰이 있었습니다. 보통 반에 부유한집아이 한두명 아니면 전체적으로는 몇몇 반장이나 부반장하는 아이들이 조금은 티를 내가며 차고다니던 것이었고 대부분은 학교앞 문구점에서 파는 비닐로 만든것었지요.. 이 친구 삼촌이 이런일을 한다고 했었습니다. 어느날 내게 하나 만들어준다했는데 몇일뒤에 건네 주더군요..아마 기억에 한동안은 약간 뻐기기도하면서 잘차고 다니다 부러졌었던가 아니면 옷핀이 고정된 곳이 떨어져 나갔던가 해서 없어진 기억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았기에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성격도 상당히 내성적이긴 했는데 나름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이야기 하다보면 동급생들을 한수아래로 보기도 했었습니다. 저랑은 같이 도시락까먹던 친구였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제 뒷자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6학년때는 혈기왕성한 젊은 담임선생님에게 진짜 비오는날 먼지나도록 맞던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아마 한달만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나온날인걸로 기억합니다.(까마득하게 잊고있던 것들인데 당시 유행하던 줄줄이 사탕처럼 추억이 꼬리를 물고 나오네요)당싱의 이친구 어머니 얼굴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친구는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생활고에 찌들었지만 그래도 자식이랑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던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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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어시간 끓였더니 모두 쫄았습니다. 일부러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 아주 잘했네요..

귤이 20여개 가까이 들어갔는데 이 조그만 통에 들어가고 조금 남았습니다.

보내주신 분이 유기농 재배한것이라고 했는데 크기 분류가 전혀 안되어있어 갓난 아이 주먹만한 것에서 거짓말 조금 보태 어른주먹만한 것까지 전혀 개념없이 뒤섞여있고 화장기 없는 쌩얼의 겉모습들은 시골아낙네같은 모습입니다.

어제는 귤차도 끓여먹었는데 반응은 시큰둥....원래 무미건조한 맛으로 먹는거야 그랬지만... 샛노란 색깔만 먹음직스러워 그랬는지도..

블로그의 관련글
2008/01/15 - [사람과사람/일상에서 만남] - 유기농 감귤과 그림
2007/09/23 - [초보를위한 영상활용/보관 및 활용] - MBC의 20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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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서울에서 열렸고 당시 프로야구가 출범한 원년이지만 프로선수가 뛸수 없었던 당시 규정에 따라서 김재박,최동원,김시진,장효조등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선수들의 프로진출을 막아두었던 때.. 아마야구 최강 쿠바가 불참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전력이나 홈그라운드임을 감안하면...김재박의 개구리번트에서 막판을 화려하게 장식한 한대화의 홈런으로 극적인 우승까지...

당시 동네곳곳의 공터등지에서 유리창 와장창 깨가며 어른들에게 혼쭐이나면서도 야구를 줄기차게 하던 시절이었고 프로야구의 바람을 타고 형형색색의 각구단 유니폼을 입고 등교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에 구입했던 기념우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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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표도 이전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있는데 우표도안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국적불명에 특정스포츠 브랜드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냐는 제기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우표디자인실의 답변은 당시 도안한 분의 기억을 근거로 동대문 야구장에서 스케치 했고 특정국적을 부각시키지 않았으며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했는데 몇가지 미진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관련자료 링크:[자료]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요판우표 디자인에 대해...
 
우선 브랜드 부분은 미즈노라는 스포츠용품 브랜드는 80년대에 각종 스포츠 브랜드들이 한국으로 밀려올때 반짝했던 부분은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 대중적으로는 유명무실한데다 이 우표가 출시될 시점에는 운동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현재는 신발에 표기되는 로고가 바뀐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야구용품으로 유명한 미즈노라는 브랜드는 83년-84년즈음부터 TV에서 광고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이우표 도안당시의 국내에서 스포츠용품의 마케팅적 접근으로서의 브랜드라는 관념이 대중들에게는 희박하던 시절이라고 보는것이 더 합당할것으로 생각됩니다. 미즈노를 보니 당시의 각종 스포츠 브랜드들이 몰려오던 때가 생각나네요. 서독의 브랜드를 인수한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부터 나이키,아식스등등 그리고 수많은 시장판 짜가 브랜드들...

잘못 설명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표속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아니면 모델이 되었던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인데 도안만 봐서는 누구인지 알수가 없습니다.우표디자이너실의 설명처럼 무명의 고교야구 선수를 묘사한것이라 설명되어도 틀리다고 반박 할수없을 만큼 식별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니면 이의를 제기하신 일본선수라고 이야기해도 그럴수 있다고 보입니다. 저는 그당시에 우표속의 주인공이 전설적인 타자인 장훈이 아니었을까 상상하곤 했었습니다.

이부분을 설명할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었으니 박찬호의 61번처럼 선수 등번호를 가지고 알아맞힐 만큼의 골수 매니아가 아니라면 알수 없는 부분이지만 22번이라는 등번호가 힌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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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이로 이제는 50줄에 접어들었네요.. 숫자로만 본다면 세월이란 무상하기도 하지요..

바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타자였고 현재는 SK와이번즈의 이만수 코치입니다.
당시에 이만수는 삼성라이온즈의 선수였던 관계로 출전하지 못했고 국가대표 포수는 심재원선수로 기억합니다. 당시 국가대표팀의 막내는 선동열 현재 삼성라이온즈 감독입니다.

이것가지고 추측하기에는 부정확하다는 분들에게 조금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드리면 당시 우표발행 당시에 체신부에서 나왔던 카탈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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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확대한 모습인데 인쇄물을 보면 M,S,LEE라고 보여집니다. 타격의 포즈만 다르게 묘사되었지 등번호에 유니폼 제기되었던 야구화의 브랜드까지 일치하고 옆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선수시절의 이만수 코치입니다.다른점이라면 사진과 비교하면 얼굴형상을 알아보기 힘들다는점과 봄이나 가을철에 선수들이 입는 얇은 옷을 속에 받쳐입었다는점입니다. 이사진은 말씀드린대로 당시 우표가 발행되었을때 같이 나온 체신부의 카탈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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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정황상 이만수 코치로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것 같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우표디자인실에서 답변한것처럼 특정인이나 특정브랜드가 아닌 일반적인 모습을 묘사했다는 설명도 받아들일수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만수 코치라는 부분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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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시절 유행처럼 너도나도 우표수집을 하곤 했었습니다.

각종 기념일에 외국 대통령의 방한이나 우리나라 대통령의 외교 순방길에 기념우표들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요즘 우체국에 몇번들락거린 기억으로는 기념우표 카탈로그를 본 기억이 없기에.. 우체국 보험이나 예금상품 카탈로그만 잔뜩 본기억만 있습니다) 그당시에는 기념우표를 발행할때 카탈로그를 주기도 했습니다. 집근처에 우체국이 있지 않았기에(당시 열성적인 친구들은 새벽같이 줄서서 기다리다 기념우표가 나오자마자 구입하는 풍경이 TV에 나오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동네 상가의 수집용 기념우표를 판매하는 곳에서 구입하고는 했는데 당시에 운이 좋으면 얻어올수 있는 것이 이런 카탈로그 였습니다.

민족기록화 시리이즈 우표(제1집)
발행일 1982년 6월 15일

아마 저의 우표수집 절정기는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이었던듯 현재 남아있는 카탈로그 몇장은 전부 1982년에 나온것이네요 그다지 열성적인 수집은 하지 않았던듯하지만 우표책이 2권정도 있습니다.

사이버우정박물관
우표포털 사이트

광고가 더 재미있네요.. 한글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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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카탈로그중에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라고 표기된 우표는 실제로 발행된 우표의 그림은 연개소문의 사수싸움이고 당시 발행한지 6개월 후쯤에 한 학부모의 항의로 뒤바뀐 부분이 확인되었고 해당 우표는 판매가 중지되었고 각종 정정공고 및 잔량을 회수해서 폐기했다고 합니다.

관련 링크 - [답변]1982년발행 민족기록화 우표에 관한 질문입니다.

현재 우표포털(http://www.kstamp.go.kr)에 기재된 기록은 정정된 상태입니다.(직접링크가 불가능해 캡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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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탈로그에 나오는 우표의 시리즈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김종서의 육진개척, 이순신의 한산대첩, 권율의 행주대첩이 있네요...
이시리즈 우표는 최초의 그라비어 6도색 우표라고 합니다.

당시에 어린마음이기는 했지만 가끔 TV에 나오던 희귀한 우표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가격이 나오는 것에 휘둥그래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몇십년이 지난후에 이런저런 공상을 곁들이면서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닌한 그리 가치가 높은것은 아니라고 알고있습니다. 가령 우표의 도안 인쇄가 잘못된 경우라던가 등등 특이한 경우에 경매시장에서 수집가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가격이 오간다는 외신만 어디서 줏어들었던 기억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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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흔하게 볼수 있던 우표책(제가 가진것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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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이야기한적이 있지만 어릴때 집에 그당시 말로는 전축이 없었습니다. 튜너나 턴테이블이 분리되는 것은 전축이었고 통합형으로 나왔던것은 뮤직센터였나..

어쨓든 전자기기 새로나오는 것을 먼저 접하는 축에 속하던 우리집이었건만(컬러TV, 녹음기, 심지어 당시에 희귀했던 영사기와 무비카메라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아까운 물건중에 하나였던 영사기는 10여년 가까이 지하실이나 다락에서 썩다가 20살 무렵 이사갈때 분실했고, 기억이 나지 않을정도로 한번인가 두번인가 봤던 그당시에 같이 구입했던 무비카메라는 일찌감치 우리집에서 사용할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팔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사춘기시절의 소원이었던 전축이라는 녀석이 없었기에 저는 카세트 테이프로 눈을 돌려 나름대로의 수집벽을 채우던 생각이 납니다.

어차피 저를 충족시켜주었던것은 당시에는 꽤나 진지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하이틴이라는 의미에 가장 적합한 것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즐겨듣던 영화음악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구입한것중에서 최고의 명작은 플래시댄스였습니다. 지금들어도 버릴만한 곡이 없는 완벽한 구성입니다. 보통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대표적인 한두곡을 제외하고는 소품에 가깝거나 영상에 맞추어진 부분이 존재하기에 감상용 음악으로는 미진한 구석이 있기도 합니다. 더구나 사춘기 시절이라 마음먹은대로 영화를 보던 시절도 아니고 영화감상에는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지금 정보를 조금 찾아보니 감독이 애드리안 라인이었네요.. 이제 알았습니다.. 이영화가 왜 18세이하 관람불가였나 조금 의아했었는데.. 기억나는건 제니퍼빌즈의 포스터 사진 뿐이지만...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저에게는 환상이었습니다. maniac,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받았던 아이린카라의 주제가,

가지고 있는 테이프는 겉표지가 없어졌습니다. 성음에서 나온것이고 1983년 6월 20일에 출시되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테이프 표면을 스캔했습니다. 아마 구입은 출시된지 몇년지난후에 했을것으로 생각되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1983년이면 중학생 시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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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써머의 로미오는 중학교시절 처음 들었을때 귀에 번쩍들어오던 곡이었습니다.

유튜브는 어떨때는 마술상자처럼 느껴지지만 음악을 생각하면 많은부분의 디테일한 깊이가 떨어지긴 합니다. 그래도 그당시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해외의 영상들을 접하고보니 색다른 감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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