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치는 복서출신 오토바이광 빌리조엘 - 업타운걸 Uptown Girl 1983년

Posted by 추억보관소
2017. 8. 23. 03:00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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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조엘은 우리나라에 상당히 서정적인 발라드 곡들을 히트시킨 뮤지션입니다. 특히 70년대 발표했던 'Honesty'나 본인의 이름을 널리알린 'Piano Man'은 당대의 빌보드 차트에 비교하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상당한 인기곡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라드곡들이 많이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본인은 락커임을 공공연히 내세웠습니다.


빌리조엘은 세살부터 피아노를 치기시작했는데 어린시절 부모가 이혼했고 어머니와 같이 살았습니다. 독일 출신의 아버지는 젊은시절 클래식 피아니스트였고 빌리조엘의 이복 동생 역시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피는 못속인다고 하더니...


빌리조엘은 1949년생으로 지금으로는 따지면 우리나이로는 칠순이 다된 할아버지입니다.


1980년대에도 빌리조엘의 어니스티나 피아노맨은 상당한 인기가 있었습니다. 우리정서에 더욱더 맞는듯합니다. 1973년 발표된 피아노맨은 긴무명의 시절을 끊어주는 곡이었고 1979년의 어니스티는 미국보다는 우리나라나 일본등지에서 더욱 인기가 높았습니다. 



빌리조엘   피아노맨 Piano Man - 1973년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던 곡   어니스티 Honesty - 1978년





피아노맨이후로 이름은 알렸지만 빌리조엘은 요즘으로 치면 노예계약 비슷하게 체결한 계약때문에 한동안은 명성이나 활동에 비해 돈이랑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독자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어필하기도 했지만 결국 열번째 앨범까지.. 이후로도 빌리조엘은 사고나 밴드 멤버등과 소송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업타운걸은 두번째 아내인 슈퍼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합니다. 두사람은 1983년에 만나 그해 결혼합니다. 여자관계가 사연이 굉장히 많았던 빌리조엘입니다. 첫번째 부인은 밴드 멤버 아내와의 불륜으로 맺어졌었고 이로인해 자살소동까지 벌였었는데 십여년 결혼생활후 이혼했고 두번째 만난 부인...  이후 다시 이혼하며 두번더 30년정도 연하인 딸뻘의 여자들과 결혼을 하게됩니다.





빌리조엘 - 업타운걸




빌리조엘의 외모는 당시 록키 시리즈로 인기 높았던 실버스타 스텔론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빌리조엘은 십대시절에 아마추어 복싱을 했었고 상당히 전적이 좋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중 코가 함몰되었었고 당시의 부상때문에 복싱을 그만두었고 현재까지도 그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아일랜드의 보이그룹 웨스트라이프의 2000년도에 발표한 리메이크곡









An Innocent Man    - 1983



Side one


1. "Easy Money" 4:04

2. "An Innocent Man" 5:17

3. "The Longest Time"  3:42

4. "This Night"  4:17

5. "Tell Her About It" 3:52



Side two


6. "Uptown Girl" 3:17

7. "Careless Talk" 3:48

8. "Christie Lee" 3:31

9. "Leave a Tender Moment Alone" 3:56

10. "Keeping th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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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여자 애니 레녹스의 유리스믹스 -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1983년

Posted by 추억보관소
2017. 8. 11. 03:25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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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스믹스는 영국 출신의 듀오로 1983년 두번째 앨범인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의 동명 싱글곡이 전세계적으로 히트치며 이름을 날리게됩니다.

특히 남장한 애니 레녹스의 모습은 당시에 컬처클럽 보이조지의 여장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중성적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리스믹스의 여자 싱어를 시나이스턴과 혼돈하고 있었습니다. 중학생 시절이던 당시에 잘못된 정보를 봤거나 몇가지가 헛갈려서 생긴현상일듯 지금보니 그냥봐도 완전히 다른사람...

묘하게 음산한 분위기에서 달콤한 꿈이란 노래를 불러대고 있는 모습은 기묘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는 젖소까지 등장하면서 전위적인 느낌까지 들지만 정서적인 차이일수 있기는 하겠지만 분위기 이상의 모습은 나오지 못함..  뉴웨이브 신스팝이 새로움을 추구하긴 했지만 비주얼로 표현할수 있는 한계가 아무래도 있는데 그래도 지나친 정서과잉까지는 가지않아 노래와 어울리는편.. 아직 세기말이 지나기 이전시대이기에... 서사나 디테일한 묘사가 나올수있는 영화까지는 아니기에... 그렇지만 노래는 지금 들어도 최고...

애니 레녹스가 작사하고 데이빗 스튜어트가 작곡한 노래로 둘사이는 한동안 연인관계이기도 했습니다. 애니 레녹스는 1954년생이고 데이빗은 1952년생



지금 80년대 팝을 정리하면서 브리티시팝이 전세계에 끼친 영향을 새삼스럽게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왬 컬쳐클럽 듀란듀란 폴리스등등... 보통 유럽의 팝은 댄스음악을 연상하거나 고유의 언어로 불리어진 음악들로만 생각했는데 영국의 팝음악은 일단 언어적인 유리함을 가지고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시기에 좋은 뮤지션들이 조금이나마 더 주목을 받을수 있었던 상황으로 볼수 있겠습니다.

당시 뉴웨이브 열풍에서 시작한 브리티시 팝음악은 미국의 퍼포먼스와 결합된 흑인음악과 더불어 양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합니다. 80년대 수많은 스타들이 영국 출신이라는게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80년대 팝음악과 90년대 가요를 중점적으로 듣고 소비하던 세대로 두시대의 특징은 아마도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누구나 어릴때 듣던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우리 아버지도 TV에 나오던 90년대 가요들을 보면서 저게 가수냐? 하면서 남진이나 나훈아 정도는 되야지.. 이런 이야기를 하긴했지만 르네상스 시기라 여겨진건 아주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이 지금보면 어딘가 엉성해도 참신하게 많이 나온 시기였습니다. 가장 큰 동력가운데 하나는 아무래도 비디오가 중요하게 가미되어 가던 시절의 다양성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지금의 가요는 굉장히 세련되었지만 의외성이 적어 금방 지치고 이전보다 리메이크 곡들도 많아 묻어가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복면 가왕 같은 프로를 보면 의외의 가창력에 깜짝 놀라지만 참신하고 번뜩이는 개성같은걸 느끼기는 어렵고 발붙이기도 어려운 현실인듯...


1983년 영국차트 2위 미국 빌보드 1위를 차지한곡 Sweet Dreams


뮤직비디오


라이브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1. "Love Is a Stranger"

2. "I've Got an Angel"

3. "Wrap It Up" (featuring Green Gartside)

4. "I Could Give You (A Mirror)"

5. "The Walk"

6.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7. "Jennifer"

8. "This Is the House"

9. "Somebody Told Me"

10. "This City Never Sle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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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아이돌 그룹 듀란듀란 - The Reflex 1983년

Posted by 추억보관소
2017. 8. 8. 04:35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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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란듀란은 수려한 외모와 뉴웨이브 신스팝계열의 신나는 음악을 했습니다. 컬쳐클럽과 마찬가지로 영국 출신이고 같은 시대에 비슷한 형태의 노래들을 선보였습니다.  80년대 당시에 컬쳐클럽이 보이조지의 원맨밴드 비슷한 형태였다면 듀란듀란은 존테일러나 사이먼 르본 닉로즈등 멤버들이 골고루 인기가 있었습니다.


듀란듀란은 특히 여학생 팬들이 많았던 기억.. 노래도 가볍고 즐거웠던데다 존테일러나 닉로즈 그리고 사이먼 르본은 수려한 외모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주변에서 필통이나 연습장등등에 잡지같은데서 오려붙여놓은 사진들을 꽤봤던걸로..


지금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 가운데 하나는 80년대 당시는 유럽에 대한 신비한 동경 비슷한 것이 있던 시절로 유학이나 업무등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외국에 나가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실제보다 많이 신비화된것들이 있다고 할수있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이후 상상하던 유럽의 모습들을 실제로 본이후에 실망감 비슷한 것을 토로하던것들도 종종 보았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컬쳐클럽이 반짝했었다면 항상 같이 언급되던 듀란듀란은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 방한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국 출신의 노래는 경쾌한 느낌이 많았습니다. 컬쳐클럽 듀란듀란 그리고 왬까지 가세해 80년대 내내 브리티시팝 의 뉴웨이브 열풍을 이끌어간 그룹이었습니다.


신시사이저 소리는 지금은 한물간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당시에는 가볍고 경쾌함을 바탕으로한 새로운 정서를 대변하는 방법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초반에는 신시사이저 소리가 가볍다고 반대하는 운동도 있었지만 뉴웨이브 그리고 신스팝으로 불리던 음악은 80년대 내내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후 힙합이나 레게등이 유행하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되었습니다,


듀란듀란은 1978년 영국에서 존테일러와 닉로즈가 결성했고 여러번 멤버들이 바뀌는 가운데 앤디 테일러 로저테일러가 합류했고 이후 보컬로 사이먼 르본이 들어오면서 익히 알고있는 듀란듀란 5명의 멤버가 완성됩니다. 처음에는 테일러란 성이 많아 반헬렌처럼 형제간인줄 알았는데 관련이 없는것 같고 그냥 우리나라에 김씨성 많은거랑 비슷..


듀란듀란이란 팀명은 바바렐라라는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악역 인물인 닥터 듀란듀란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듀란듀란이 전세계적으로 인지도를 가지게된것은 3집에 수록된 The Reflex 입니다.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데 그이전부터 알려진 곡들이 있었지만 이곡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됩니다. 


듀란듀란은 이후 멤버들이 찢어져 아키디아 파워스테이션등으로 그룹이 갈리게됩니다. 당시에 팬들의 반대 목소리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듀란듀란 시절보다 주목받는게 분산되었고 결국 다시 재결합 수순을 밟습니다. 대부분 재결합 이후 이전보다 주목을 못받게되지만 이후에도 몇개의 히트곡이 나왔고 현재까지도 그룹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듀란듀란의 노래를 처음 들은건 라디오를 끼고살던 1983년 후반부터 1984년까지로 New Moon on Monday였고 이후 리어카에서 구입한 그동안 나온 여러 앨범이 혼합된 힛트곡 테이프를 구해 들으면서였습니다. Girls on Film , Union of The Snake , Hungry Like The Wolf , Rio , 이후로도 A View to a Kill , The Wild Boys, Notorious 등등 무수한 히트곡들이 쏟아져 나왔고 한시대를 풍미한 밴드입니다. 멤버들의 외모때문에 당시에는 음악적으로는 어느정도 평가절하되기도 했었습니다.


외모로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존테일러는 여러번 개인활동을 시도했지만 듀란듀란으로 활약할때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하트위크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나온것이 기억납니다.  I Do What I Do


80년대 중반까지 인기를 양분하며 활약하던 컬쳐클럽이 보이조지의 약물중독으로 인해 밴드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듀란듀란은 약간의 이합집산의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꾸준하게 활동하던것과 비교해볼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이들어 되돌아보니 보이조지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결국은 성공적으로 살아남는자는 꾸준히 마지막까지 활동하는자가 되었습니다. 80년대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컬쳐클럽보다는 듀란듀란 팬이 더 많았습니다. 여장 남자인 보이조지가 특이하긴 했지만 외모가 훤칠한 아이돌 밴드와 비교해서 호감을 가지기에는 한계가 있었기도...



뮤직비디오









1989년 내한공연 당시 영상







Seven and the Ragged Tiger



1. "The Reflex"

2. "New Moon on Monday"

3. "(I'm Looking For) Cracks in the Pavement"

4. "I Take the Dice"

5. "Of Crime and Passion"

6. "Union of the Snake"

7. "Shadows on Your Side"

8. "Tiger Tiger"

9. "The Seventh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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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 남자 보이조지의 컬쳐클럽 - Karma Chameleon 1983년

Posted by 추억보관소
2017. 8. 4. 10:51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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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여장한 남자로 나온 보이조지의 컬쳐클럽은 영국출신 밴드로 특히 여장을 했기에 많은 주목을 끌었습니다. 당시에 여장으로 노래 부르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보이조지가 여장으로 활동하던게 충격인 이유는 지금도 그런 시선이 많기는 하지만 더욱 심했던 당시에는 동성애자에 대해 매우 탐탁치 않은 시선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했습니다. 

개인생각에 동성애에 대한 공포의 가장 큰 이유는 AIDS 공포로 인한 것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당시만해도 에이즈라고 하면 불치병으로 치료약도 없고 면역력이 없어 감기만 걸려도 얼마못가 사망하는데다 슬쩍 스치기만해도 옮겨질수 있다고 생각되었기에 전염에 대한 공포증때문에 더욱 심했던듯...

당시 우리나라 라디오에서는 보이조지와 남장 여자였던 유리스믹스의 애니 레녹스와 사귀는거 아니냐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뉴웨이브 풍의 노래는 영국 뮤지션들이 많이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컬처클럽 유리스믹스 그리고 휴먼리그 듀란듀란까지 유명한 밴드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밴드들입니다. 뉴웨이브는 주로 전자악기 연주가 베이스로 깔리는데 신시사이저 연주는 신비감이 있던 시절이고 컴퓨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가볍고 경쾌한 소리였습니다.

컬쳐클럽은 보이조지의 원맨밴드처럼 보였기에 몇년 못가 결국 보이조지의 약물중독과 멤버인 모스와의 관계등 여러가지 사건으로 해체하게 됩니다. 

멤버 구성은 보이조지(보컬) 밀키 크레이그(베이스 기타) 로이 헤이(기타 피아노) 존 모스(드럼)로 팀명을 컬쳐클럽으로 하게된 이유는 여장을한 보이조지 금발의 로이헤이 흑인인 크레이그 유대인인 존모스등 다양하게 모였기에 컬쳐클럽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보이조지는 현재 일본 정토불교와 관련된 남묘호렌게교를 믿고있다고합니다. 컬쳐클럽의 노래가운데 하나인 miss me blind 뮤직비디오에 불교와 일본 풍경이 배경이었는데 인연이 있었는듯... 카마 카멜레온의 카르마도 불교에서 쓰이는 용어라 관심이 많았거나 컨셉이었을듯.. 


1983년 발표된 두번째 앨범인  Color by Numbers에 수록된 곡으로 1983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빌보드 1위를 3주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Culture Club - Karma Chameleon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의 배경은 1870년대 미시시피로 형형색색의 의상이 나오는 가운데 가사에 나오는 빨간색 금색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라이브







Color by Numbers


Side one


"Karma Chameleon"

"It's a Miracle"

"Black Money"

"Changing Every Day"

"That's the Way (I'm Only Trying to Help You)"



Side two


"Church of the Poison Mind"

"Miss Me Blind"

"Mister Man"

"Stormkeeper"

"Vict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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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음악의 황제로 불리는 마이클잭슨 - 빌리진 Billie Jean 1983년

Posted by 추억보관소
2017. 8. 2. 03:41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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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은 팝음악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음반판매량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깨질수가 없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을 빼놓고 보더라도 팝음악사에서 단 일인만 언급하라고하면 아마도 마이클잭슨이 선택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권유와 착취등의 학대(?)속에서 뮤지션의 길을 걷게되는데 어릴때부터 뛰어난 가창력으로 미국의 보이밴드를 대표하는 잭슨파이브의 리드보컬을 맡습니다. 잭슨파이브는 마이클 잭슨의 형제들로 이루어진 밴드..


성인이 된이후 두번째로 내게되는 개인 정규앨범인 Thriller는 당시 가히 폭발적으로 전세계적인 히트를치며 80년대를 대표하게되고 팝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올라서게됩니다. 당시 마이클잭슨은 멀고먼 타지인 우리나라에서도 삼척동자도 알만큼 유명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가히 신드롬이라 할만했는데 지금세대에게 이해하기 쉽게말하면 80년대 내내 전세계적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행이 식지않고 일어나고 있었다면 조금은 가늠할수 있을듯.. 물론 그것보다 더욱 광폭이었습니다. 듣는 음악에서 듣고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시대의 최고 슈퍼스타로 음악만 놓고보면 천재성과 시대가 결합된 복받은 케이스라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유명세로인해 마이클 잭슨은 80년대 이후에는 많은 추문과 가십성 소문들에 평생을 시달리기도 했는데 충격적인 마이클잭슨 사후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되었고 좀더 깊숙히 관여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사실을 알았지만 오히려 역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한것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명세와 금전적인 이익앞에서는 진짜 피도눈물도 없는 하이에나같은 인간군상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더구나 수줍은 천재로 불리던 마이클잭슨은 초반 여러가지 언론에 나오는 가십들에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는데 드릴러 앨범 작업을 지휘한 퀸시존스등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무대에설까 의구심이 들었을정도로 심한 내성적인 성격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중에는 속으로 끙끙 앓았을듯...



앨범 가운데 처음으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는 빌리진은 가상의 인물로 요즘말로 하면 사생팬정도인 여자로 추측해볼수있는데(실제 아이디어를 락스타나 뮤지션들을 광적으로 따라다니던 여자팬들에게서 얻었다고합니다) 자기 아이를 낳았다고 협박하는것에 대해 아니라고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빌리진 뮤직비디오




상당한 미모의 빌리진이란 여인과 새벽까지 춤추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내용으로 본인이나 형이었던 잭슨파이브의 저메인 잭슨의 경험담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퀸시존스의 우려가운데 하나였던 빌리진킹이 연상된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곡이 유명세를 타면서 실제로 70년대 테니스 스타였던 빌리진킹은 자신이 아니라는 기자회견을 하기도했고 마이클잭슨과 친했던 우리나라 3대 책받침 여신(브룩실즈 소피마르소 피비케이츠)이던 브룩실즈 일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기고 논란이 일어나는 방식의 마케팅을 종종 썼다고합니다.


빌리진의 공전의 히트를 치게된데는 가장 유명한 뒤로가는 문워크를 꼽을수 있습니다. 모타운 레코드 25주년 기념에서 형제들인 잭슨스와 공연뒤 솔로 무대에서 선보인 것으로 이후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며 따라하게 됩니다. 마이클잭슨이 선보인 브레이크댄스는 당시 대단한 선풍을 몰고왔는데 브레이크댄스는 원래 흑인아이들이 뒷골목에서 추던춤으로 마이클잭슨이 양지로 끌고 나온것입니다.



빌리진 모타운 25주년 기념 공연중 문워크 선보인 영상




마이클잭슨의 성공은 단순히 뮤지션으로서의 성공만을 뜻하는것이 아니라 흑백차별을 없애는데 상당한 기여를 합니다. 법적이지않은 보이지 않는 차별로 존재하던 것으로 당시 MTV에서는 흑인 음악에 대한 편견이 심했고 내보내지도 않았는데 마이클잭슨이후 완전히 오픈하게 됩니다. 슈퍼스타인 마이클 잭슨은 세계 곳곳 가는곳마다 국가원수들이 맞이했고 미국에서도 백악관에 가는등 대통령들과 여러차례 만납니다.


빌리진의 성공은 마이클잭슨 개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의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Thriller (1982)



1. Wanna Be Startin' Somethin'

2. Baby Be Mine

3. The Girl Is Mine

4. Thriller

5. Beat It

6. Billie Jean

7. Human Nature

8. P.Y.T. (Pretty Young Thing)

9. The Lady in My Life



블로그 관련글


2009/07/08 - 마이클잭슨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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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음악의 아이콘이된 여자 마돈나 - 할리데이 Holiday 1983년

Posted by 추억보관소
2017. 7. 31. 03:30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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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쓴것처럼 신디로퍼를 워낙 좋아하던 십대시절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마돈나에대해 폄하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마돈나는 신디로퍼에 대적할수 있는 가수였지 지금처럼 팝의 아이콘이 되리라고는 대부분이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긴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 무렵 공중파 방송에서는 혹평을 받기도 했었으니 사람일은 전문가 집단의 평가와는 무관한...)


신디로퍼처럼 싱어송라이터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댄스실력말고는 매력있는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가창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가수로서는 조금 반짝하다가 사라지리라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너무 섹시한것으로(만 이라고 생각) 어필하는게 어린마음에 그닥 호감이 가질 않았습니다. 하긴 지금보기에는 매우 촌스러운 우리의 모습인데 마이클잭슨 내한 공연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던 우리나라였으니... 반대 이유는 퇴폐문화의 상징이라며... 지금보면 어처구니 없기도한... 다양성보다는 즉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방법과 처세를 곳곳에서 볼수있어 씁쓸한 모습입니다.


재미있는건 마돈나는 내한공연을 한기록이 없네요. 몇번 이야기만 나오다 성사된적이 없는데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투어의 여왕이기도한 마돈나가 그동안 우리나라에 온적이 없다는게 신기하네요.. 개런티를 맞추기 힘들었거나 이슈를 몰고다닐만한 것이 없었던 모양인듯... 마돈나는 아무리 리즈시절이 지났다해도 단순한 섹스어필을 통한것으로인한 남자팬보다는 전반적으로 여자팬덤이 대단한 가수인데 신기함..




결과론이긴 하지만 마돈나의 솔직함을 내세운 대담한 퍼포먼스는 뒤로 갈수록 매우 영리한 전략적인 선택이었고 기업으로 따지면 적절한 시기에 매정하지만 현실적으로 조직을 혁신하는 방법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패하거나 저조한건 다른 솔직함을 빙자해 정면돌파하는..


앞서 언급한 신디로퍼와 비교하면 신디가 자기 세계를 중요하게 선택한 아티스트였다면 마돈나는 자기세계를 중시한 아티스트라기보다는 그냥 자기자신이 더 중요했던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든것의 중심에 자신이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것을 위해서 매우 영리하고 기민하게 움직인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어찌보면 쉽게 들끓었다가 쉽게 식어버릴수있는 대중문화라는 것에 매우 어울릴만한 처세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지금시점에서 마돈나의 활동시절 뮤비나 라이브를 보면 상당한 패션센스와 세련미 그리고 엣지있다고 말할수있는 퍼포먼스를 볼수 있습니다. 신디로퍼가 성공할수로록 점점 개인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일관성의 방향으로 갔다면 마돈나는 철저하게 자기입장에서서 자유자재로 변신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올드팬이라 아직도 신디로퍼와 마돈나를 자꾸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게되네요.. 사실 두사람은 음악적으로 접근하면 동시대 활동을 빼고는 그리 공통점이 많은 유형이 아닙니다.




마돈나의 공식적인 데뷔시기인 1983년 발표한 madonna 앨범에 수록된 Holiday


개인적으로 마돈나 하면 떠오르는 곡이 홀리데이와 Like a Virgin입니다. 이후에는 관심 시야에서 많이 멀어진 가수이기에 노래는 들어본 것들이 많지만 특별히 감흥이 일지는 않습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팝음악보다는 가요를 많이 선호하기 시작했고 십대시절이 지나는중에 팝음악보다는 연주음악 듣는데 재미들려서 관심이 많이 떨어졌던 상태였습니다.


마돈나 Holiday 1983년에 발표된 곡으로 25살의 앳된 마돈나를 볼수 있습니다. 



무용을 전공한 마돈나답게 유연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모습..




라이브(?) - American Bandstand, 1983





80년대 MTV의 등장으로 팝음악 지형이 바뀌면서 제일 크게 주목 받은게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를 꼽을 수 있습니다. 둘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58년 개띠 동갑.. 유명한 일화가 매우많고 셀수없을 만큼의 남성 편력이 매우 심했던 마돈나의 유혹을 마이클잭슨이 물리쳤다는 이야기도...





발매일 1983년 7월 27일


Madonna


1. "Lucky Star"

2. "Borderline"

3. "Burning Up"

4. "I Know It"

5. "Holiday"

6. "Think of Me"

7. "Physical Attraction"

8. "Every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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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유년시절을 극복한 신디로퍼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1983

Posted by 추억보관소
2017. 7. 25. 03:44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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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수놓은 최고의 여가수였던 신디로퍼... 물론 뭐 결과론적으로 접근하면 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팝의 최고의 여가수 자리를 차지한건 마돈나를 떠올리게됩니다. 하지만 1983년부터 85년까지 최고의 자리는 신디로퍼였습니다. 집시 스타일의 매우 특이한 복장이며 걸크러쉬를 떠올리게하는 강렬한 곡부터.. 그리고 결정적인건 개인적으로 신디로퍼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 마돈나는 반에반도 못따라오던 십대 시절의 우상이기도..


80년대 초반만해도 마돈나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신디로퍼는 서른살을 넘긴시점이었고 이 앨범이 나오기 전만하더라도 락밴드의 싱어였습니다. 성대이상으로 가수생활 최대위기에 봉착하기도 했습니다만 이를 극복했고 싱글로 나서기전에 있었던 일화로 신디로퍼는 자신만 계약하자는 POLYDER 레코드사의 제안에 자신이 소속되었던 블루앤젤(Blue Angel) 밴드 전체와 계약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의리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음반은 실패하고 파산 상태에서 신디로퍼는 뉴욕의 클럽들을 전전합니다. 이후 기회가 다시 찾아왔고 내게된 앨범이 She's So Unusual 입니다. 한앨범에서 빌보드 탑10에 4곡이나 들어가면서 가히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됩니다.


신디로퍼는 흐름을 잘따라가 영리하다고 볼수있는 마돈나와 비교할때 최고의 다른점은 싱어송라이터였다는점을 꼽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부분으로인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중시했기에 나중에 마돈나에 대중성에 밀리게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가져오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음악세계에 더욱 충실해지면서 대중성과 거리가 어느정도 생기게 됩니다. (물론 마돈나에 점점 밀리면서 이런 악수를 두었다는 설도있었지만 신디로퍼의 인생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결정적인건 이부분이 아닐수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둘수있습니다. 물론 사람 속을 전부 알수는 없겠지만...)




전세계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신디로퍼를 유명하게 만든 노래는 역시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이라 할수 있습니다. 원곡은 1979년 로버트 헤저드가 부른 것으로 공식적으로 발표는 되지 않았습니다. 신디로퍼는 원곡에서 여자들에 대해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는 것들을 여자들의 강한 주장으로 바꾸어 부릅니다. 내용면에서는 원곡을 만든 사람에게 한방 먹인셈..


Girls Just Want To Have Fun는 나중에 신디로퍼의 개인적인 음악성과 합치하지 않는 곡중에 하나로 알려집니다. 이유를 대자면 우리 속담에 중이 제머리 깍지 못한다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스로 작사작곡에 손을대는 싱어송 라이터인 신디로퍼가 거의 손대지 않은 곡중에 하나이고 1980년대 자신의 앞길을 열어주기도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던셈.. 후일 그녀의 행보를 이해할수 있는 부분중에 하나가 될듯...





1983년 9월 6일 릴리즈 되었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빌보드 2위까지 올라갑니다.




1984년 MTV 여자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했습니다. MTV의 등장은 팝음악의 지형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듣는 음악에서 듣고 보는 음악으로 탈바꿈하게됩니다. 팝의 황제인 마이클잭슨은 재능과 시대가 결합된 슈퍼스타였고 신디로퍼와 같이 언급되는 마돈나는 시대의 흐름을 가장 기민하고 영리하게 이용했다고 할수있습니다.


뮤직비디오 첫부분에 나오는 중년 여인은 실제 신디로퍼의 생모이고 아버지로 나오는 사람은 프로레슬링 매니저인 캡틴 루 알바노입니다. 나중에 알게된건데 WWE에 신디로퍼가 많이 나갔던 모양입니다. 지금처럼 미국방송을 뒤적이거나 찾아볼수 없던 시절이라 몰랐던듯... 관심이 있고 우연이 겹쳤다면 AFKN에서 봤을수도 있었겠지만 십대시절이던 당시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신디로퍼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어머니나 이모들이 가부장적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 마음대로 재능을 펼치지 못한것에 대해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정서들이 여자들 그리고 나중에는 레즈비언이었던 친언니로 인해 성소수자들을 위해 사회적 발언들을 많이 하게됩니다. 그러니까 신디로퍼의 발언들은 일회성 혹은 이성적인 동조가아닌 살면서 지긋지긋할만큼 체득된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정일은 우리나라의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주는 신디로퍼보다 마돈나에 더욱 열을 올린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신디로퍼는 1989년 내한공연을 했었고 이후 2014년 예정이었지만 돌연 취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1979년 로버트 해저드의 원곡





많이 리메이크 되었는데 1994년에 본인이 리메이크한 곡


Hey Now (Girls Just Want to Have Fun)






She's So Unusual 앨범 수록곡



Side A


1. "Money Changes Everything"

2. "Girls Just Want to Have Fun"

3. "When You Were Mine"

4. "Time After Time"


Side B


5. "She Bop"

6. "All Through the Night"

7. "Witness"

8. "I'll Kiss You"

9. "He's So Unusual"

10. "Yeah Yeah"




공식 웹사이트 - http://cyndilauper.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officialcyndilau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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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맞춰진 퍼즐 kc and the sunshine band- give it up 1983

Posted by 추억보관소
2017. 7. 20. 09:46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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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아마도 1980년대 중반으로 기억되는데.. 귀가 매우 즐거운 노래였습니다. 제목도 모르고.. 소니 워크맨 데모 테이프에 수록되어 있던 노래로.. 물론 그때 들었던곡은 KC and Sunshine Band의 give it up 이었지만 매우 웅장하게 편곡된 다른 뮤지션의 곡이었습니다.


요즘 세대는 잘모르겠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워크맨이나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면 짧은 분량의 데모 테이프를 주곤했습니다. 당시에 비디오 VCR을 구입해도 영화가 수록된 비디오테이프를 주던 기억도 납니다. 이전통은 DVD 시절까지 이어지긴 했지만.. 지금처럼 미디어를 다운받아 보는 시대에는 없어진..


노래의 제목이나 가수가 매우 궁금했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은 고사하고 컴퓨터의 존재도 제대로 구경하기 힘들었던 시절.. 그렇게 그냥 기억에만 남아있던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2015년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무려 30년만에 듣게된 원곡.. 기억에서도 사라진듯한 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퍼즐을 우연히 길에서 줏어 맞춘 느낌이란게 이런걸 이야기하는것 같았습니다.



 kc and the sunshine band- give it up 뮤직비디오




1980년대는 미국 팝의 황금시대라 할수있습니다. 특히 영상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이기도합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것으로도 옮겨가던 시기이기도합니다. 이전에 보여준 공연 위주에서 스토리를 입히거나 자신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본격화 되기 시작한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 디스코 시대를 풍미했던 밴드인 kc and the sunshine band는 1973년 데뷔후 1985년에 해체했다 이후 1993년 재결성


리드 보컬 해리 웨인 케이시(Harry Wayne Casey)는 레코드 회사에서 일하다 결성. 1982년 발매된 앨범인 All in a Night's Work에 수록된 Give It Up은 1983년과 84년 영국와 아일랜드 차트를 석권하는등 유럽을 중심으로 크게 히트가 되었고  빌보드 챠트에는 18위까지 기록 


실제 무대 영상







All in a Night's Work



Side one


1. "(You Said) You'd Gimme Some More"

2. "Party with Your Body"

3. "Give It Up"

4. "Don't Run (Come Back to Me)" (Duet with Teri DeSario)



Side two


5. "You're Going Out of Your Mind"

6. "On the One"

7. "It's Too Hard to Say Goodbye"

8. "Do It"

9. "When You Dance to the Music"

10."Are You Feeling Lik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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