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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람/운명적인 만남

잃어버린 댓글을 찾아서...

햇살과산책 2007. 7. 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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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에 적힌대로 블로그 계정을 이전한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테터툴즈에서 티스토리로 이전해서 데이터는 전부 살아났지만 국내외 메타블로그에 등록된 RSS 주소를 모두 수정했던 기억이납니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것들은 이전주소로 달았던 댓글들입니다.
티스토리의 댓글알리미에서는 이전 주소로 작성된 것들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얼마안되 많지는 않지만 몇개가 더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소중한 소통의 기억들을 잊어버리기전에 찾는 중입니다.

아래 댓글은 가끔씩 들르는 Goldenlog님의 블로그에 달았던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곳의 댓글은 블로그 주소가 바뀌어 해당 링크를 수정했더니
댓글을 쓴 날짜는 5월17일이고
Goldenlog님의 답글은 4월 27일로 나옵니다.

블로그 초기에 제블로그에서 reply 메뉴를 누르지 않고 답글을 달았던 기억도 납니다.
답글을 기다렸던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이자리를 빌어 하고싶습니다.

Goldenlog님은 경험에서 나오는 포용력이 넓으신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적용할수 있을만큼 젊게 사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해당 블로그에 작성하신 글을 이것저것 보다보니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습니다.

Goldenlog님의 원문 - 패거리문화는 우리가 극복해야하는 가장 원천적인 악습 
                              작성된날짜: 2007년 4월 21일

아래는 달았던 댓글입니다.

제 생각에 패거리 문화는 어느곳이나 존재합니다. 문제가 되는것은 원칙과 정도차이때문이지요. 뒤집어서 말하면 패거리문화를 없앤다는 접근법은 생산적이지 않고, 어떤식으로 표출이 되게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것이냐가 현실적인 접근이 될듯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의 당쟁을 들수 있는데 4개의 대표적인 파당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나라를 보면 일본이나 유럽같은 곳은 그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몇백개의 자치적인 집단들이 존재한것을 알수있습니다. 하나의 전제군주 아래에서 중앙정부의 통제에의해 언제든 짤리수있는 관료와, 군주의 통치가 마음에 안들고 힘만있다면 반기를 들수있는 영주는 운신의 폭이 다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는 그런식의 봉건적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이부분은 김용옥의 8-90년대에 나온저술 곳곳에서 알게된 견해들입니다)

이부분은 구획된 개인화의 경험이 별로없는 한국적 특성의 한부분이 될수도 있습니다. 물론 장단점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장점이 되는시점과 단점이 되는 시점이 존재하겠지요. 지금처럼 나만 잘되고보자는 패거리문화가 만연하면 단점이 되고 어려운 시기의 국난극복의 사례를 보면 장점이 될수도 있습니다. 이런 성향의 에너지들을 어느방향으로 끌고가느냐가 중요한점이 되지 않을까요?

이런 봉건적인 경험의 부재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하는것이 아니라 지나간 흐름을 본다는 관점. 사회든 개인이든 모든것을 다 경험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험의 부재가 꼭 나쁜쪽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들면 요즘 방영중인 연개소문에서 묘사되는 양만춘과 연개소문이 가지는 차이점입니다. 둘다 국가에 충성하지만 전제군주에 대한 입장은 다른면모를 보입니다.추구하는 목적이 같았기에 나중에는 동화될수 있었습니다.물론 이것은 사료가 별로없기 때문에 해당작가의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역사적으로 양만춘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을 영웅으로 여겨왔습니다(대표적인 예가 이순신, 패거리문화의 희생자이기도 하며 한개인으로 보면 인간승리의 모습입니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개인적으로 존경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모두 참아가며 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사회적인 불만이 극에 달하면 민란이 발생했지요.
역사적으로 민란이 아주 많았던 국가중에 하나지만 전제군주를 물리치기위한 목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현대사의 불행은 군사독재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야 7-80년대에 어렸기 때문에 피부로 체감하진 못했지만 갖은 고난의 현대사의 진행중에 대단원을 장식했습니다. 경제발전이라는 아주큰 달콤함이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잃어버린 것들이 미래의 짐이 되었습니다. 통치자의 입장에선 이순신이나 양만춘같은 능력과 더불어 일단은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사람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과정에서 솔직히 이순이나 양만춘만큼의 걸출한 능력이나 시대적 양심은 떨어지지만 충성심하나만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고 불행하게도 균형을 잡을수 있는 합리적인 반대세력이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예를들면 장준하, 돌베개란 책을보면 사람됨을 알수있을듯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힘도없는 사람이 양심적으로 행동하는것은 불이익이 더 많이 돌아옵니다. 현실적인 계산이 빠른 사람은 사회적인 가치니 의미를 떠나서 이익을 취할수 있는곳에 줄을대게 되어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개인입장에서 고의적으로 남 괴롭히지 않고, 부정한 방법을 쓰지않고 융통성을 발휘해 열심히 산다면 뭐라말할사람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이익을 위해 공정한 경쟁은 도외시하고 다른대상을 밟고 올라서야 될때, 더나아가 사회전반에 이런풍조가 굳어져 있고 집단화되면 자의든 타의든 목적을 위해선 무슨일이든 할수있는 집단들이 사회전면에 대두됩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식은 당연히 없습니다. 이미 사회 깊숙히 자리잡았기에 오히려 그런 행위를 취하지 않으면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됩니다. 자신에게는 다른집단도 그렇다는 면죄부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이부분이 어설프게 처음에 말한 원칙이나 정도차이의 현실적인 모습중의 한가지 단면입니다.
사람사는 모습이 완벽하지 않기에 개인차원에서 만들어지는것들은 실수도 있을수있고, 개선의 여지도 있고,
억울한 모습도 있을수 있지만 집단화되면 개선하기 상당히 힘듭니다.
어찌보면 굳어진만큼보다 몇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부분을 어떤 영웅이 나타나 확 휘어잡는듯한 상상은 옳지 않습니다.우리나라 현실이 다층화되었기에 어떤 특정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단순하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출발점은 역시 개인적인 자정능력에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개인들이 바꾸어 나가기 시작해야지요. 집단이 먼저 만들어진 상태에서 고쳐나가는 것은 현재의 모순을 다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제생각에 현재상태에서의 출발점은 개인의 일상생활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부분이 어느정도 이루어져 저변이 늘어나면 집단화 되어도 쉽사리 변질되지 않을듯합니다.
집단화가 먼저되면 나찌의 경우처럼 될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처음 나왔을때는 전국민의 자발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미국같은 경우는 국가차원에서 엄청난 힘을 가졌고, 자신들의 힘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유치하고 불합리하지만 깨어있는 개인들이 사회곳곳에 있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사족으로 유교를 체험한 국가에서 볼수있는 현상인데,일본의 학자중에 마루야마마사오란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양심적인 학자인데 2차대전 직후에 전범재판을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독일의 전범들은 대부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는데 일본의 대표적 전범들은 모두 발뼘을 했답니다. 이부분을 연구했는데 전범들의 변명은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그래서 자신은 어쩔수 없었다는 명분론이었습니다. (현대일본정치론,고려원 이책은 나온지 오래되서 아마 절판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유교를 부정적인 의미로 묘사한것이 아니라 나쁘게 적용되면 이런현상이 나올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부분은 어떤 종교에 대입하더라도 좋은점과 나쁜점이 있습니다. 종교는 믿는 사람의 성숙도에 따라서 작용하는것이지 사이비 종교를 제외하면 좋다나쁘다를 말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란만 가중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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