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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끼적끼적 찾아내다.. 7

햇살과산책 2007. 7. 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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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첼 '철학을 사랑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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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이름처럼 묻고 답하는 곳이었습니다.
참고로 이 커뮤니티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분들과 단지 호기심만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서로 질문과 답변을 많이해서 즐거웠습니다. 당시에는 악플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아 더욱 즐거웠던것 같습니다.

질문: 동서양 철학이 비교,
        논점은 동서양철학의 비교를 통한 누가더 높은 경지에 이른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합당한 것인가라는 질문

답변: 어떤 단상

제생각으로는 동서양철학의 나뉨이란 것에 지역적의미 이상을 부여하는
것은 하나의 대결적 양상이상의 성과가 없을 듯 합니다 즉 논의는 가능하되 실제 얻을 수 있는 것은
논의에 비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나뉨이란 즉 분별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아는 성리학 즉 신유교는 불교의 거센 도전 속에서 일어난 하지만 불교의 많은 장점들을 수용한
결과입니다.(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통나무-주자학과 양명학.까치 참고) 그 당시에 중국에 선교를
하러왔던 마테오 리치는 오히려 홀딱 빠져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상식으론 영화 미션같은데서 볼
수 있는 선교사의 숭고함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무의식 적인 오만일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참고) 마테오 리치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가 요직의
관료들이란 점이 신비로왔고 자기가 들고온 삼위일체니 뭐니 하는 신학적 개념들이 이 사람들에겐
아주 오래전에 논파된 개념들이란 점에서도 놀라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서양인들이 이런 생각의
관점을 즉 인식론적 반성을 깨달은건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적 인류학 이후 정도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불교는 아니 초기 불교는 불립문자의 세계를 꿈꾸었지만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방대한 분량의 서적을
남겨놓은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불경을 한역한 구마라즙은 감금상태로 번역만 했다는 불행한 개인사)?
불교가 수행적인 선의 형식으로 유입되면서 많은 창조성과 더불어 폐단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
(지금의 사이비 종교적 행태)이 되면서 성리학이 창궐하게 됩니다.

이 세계라는 것은 관심이 만들어내는 차이들(베르그송의 이야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철학의 대가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이런 논의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20세기의 과학철학자들의 논의속에서(쿤의 패러다임이란 것도 결국 세계란 그 시대의 한계속에서
규정짓는 것, 혹은 비트겐슈타인의 주관의 한계도 그렇구요)
러셀이 중국에 유학한후에 자기의 저술을 철학사로 명명했다 서양철학사로 고친것도 그렇구요

물론 이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비교에서 어떤 것이 우위에 있다고 논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들을
끌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성리학도 분권제가 아주 발달했던 일본에서 전세계적인 파시즘의 광풍으로 몰아넣은
적도 있고(일본적 파시즘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일본정치론.고려원  일본의 분권제는 김용옥의 노자철학이것이다와 피터 듀스의 일본의 봉건제 참고)
즉 중요한건 맥락의 적절성과 관련있다고 생각합니다
(맥락과 관련해선 김영민의 진리,일리,무리. 철학과현실사)

철학의 내용들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철학함의 이유는 무수합니다 결과도 무수하구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가 쓴 것들이 앞뒤가 안맞는 부분들도 많고
지면상으로도 적군요 결국 이런 계기들이 창조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내용이란 것들도 이런 생각의 창궐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인데
제 생각의 잘못된 부분들은 누군가 이야기해주시면 고맙구요
좀 더 많은 대화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들이 나올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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