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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산책
프리첼 '철학을 사랑하는 모임' 이전 기록 남겨두는 과정 삶의 이야기 게시판 기록 이곳에서는 가끔씩 시사주제를 정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당시에 김영삼 전대통령이 사라졌던 개그를 다시금 선보이던 시절인데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일부언론에서 전대통령의 의견이라는 미명하게 자기의 목적에 맞게 가공해서 이슈화 시켜 정치적인 공세를 펴던것에 대한 우려의 입장에서 의견을 냈었는데 이부분을 직접적인 대응의 의미로 접근하던 분과의 의견교환이었습니다. 지금보니 비난의 입장은 같았지만 제가 언어표현을 곡해하게끔 사용한것이 있었고 재미있는 것은 정치적인 이슈에는 한발씩 빼던 분위기를 볼수 있습니다. 대화라는 것은 서로 상대방의 의미에 서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2001년 2월 이번주 시사주제:김영삼 두번째 회고록출간! 답변: 비난..
프리첼 '철학을 사랑하는 모임' 이전 기록 남겨두는 과정 삶의 이야기 게시판 기록 지금보니 참 두서없이 썼네요.... 답변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뭔가 시간에 쫓기어 휘갈긴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곳이 철학커뮤니티라 조금은 현학적이고 철학자나 인문학자 이름들이 많이 거론되었습니다. 2001년 1월 질문내용: 거짓말하는 것에 대하여... 답변글: 하나의 이야기 거짓말의 의미라? 어린왕자에 보면 지리학자가 나오지요 그는 자기자신에겐 아주 성실하고 충실했지만 시간과 공간속에 거주하는 인간에겐 불필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었지요 즉, 왠지 거만해 보였지요 제 생각으로는 잣대의 문제겠지요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는 시점에 승조라는 승려가 있었지요 그는 대단한 학식과 실천력을 겸비한 사람이었는데 결국 권력자의 비위에 거슬려..
아마 프리첼의 유료화(2002년 거의 지났을무렵)의 된서리를 맞아본 기억을 가진분이 있을것입니다. 2000-1년까지 약간은 소심한 제성격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같이 웹을 배우던 사람들과 친목모임을 운영하기도 했었고(이분들에게 죄송한게 현재하는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후반부에 소홀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제기억에 20여개가 넘는 커뮤니티사이트에서 눈팅만 한경우도 많았지만 일하면서 짬짬이 공을 들여가며 활동하던 것도 몇군데 있었습니다. 가장 공을 들여가며 활동했던것은 위의 친목단체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일본의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의 소설제목이기도 합니다)와 '철학을 사랑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외에도 웹,디자인,독서,예술,문학관련 커뮤니티들을 자주 갔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것은 ..
이책의 원래 제목은 '전쟁과 반전쟁'이란 제목으로 1994년에 번역된 것인데, 개정된 제목인 '부의 법칙과 미래'로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라 합니다(알라딘 검색중에 알게되었습니다, 알라딘 리뷰에 어떤분이 말씀하신것처럼 책제목이 묘하게 바뀌었네요). 제가 본것은 이전에 나온것을 읽었음으로 이것을 기준으로 말씀드릴수 밖에 없겠네요. 개정판에는 가상 한국전쟁에 관한 것이 실려있다 합니다. 이전판본에도 조금 언급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앨빈토플러는 유명한 미래학자지만 미국이란 나라를 현재 생각해보면 자기가 가진힘을 제대로 제어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전쟁이란 형태가 어떤식으로든 존재해야 국가 지속이 되는 시스템입니다. 군수산업의 기형적인 발달때문에 온것입니다. 사회지도층은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샤만 즉 무당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샤마니즘(초판 1992년 까치 보유본 2쇄 1992년) 샤마니즘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윤기 옮김/까치글방 이책의 나오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샤만이 되는 사람은 이미 선택되어져있고 거부할수 없다 거부하면 죽는다. 샤만이 되는것은 스승이 되는 사람이 중요하며 접신의 과정을 거친다 접신몽은 실제로 똑같은 몸적 경험을 하며 온몸의 뼈들이 모두 뜯겨졌다 재조합된다 등등.. (예전에 매트릭스란 영화가 나왔을때 키아누리브스가 온몸에 장치들을 대고 실제몸은 누워있지만 뇌속(?)에서 활극을 벌이는 장면을 봤을때 문든 이이야기가 떠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샤마니즘은 동아시아에 국한 된것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그 형태를 찾아볼수 있으며 현재의 학술적 의의는 그들이 경험하는 죽음의 세계..
반야심경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홀딱빠지게 하는 매력을 느끼셨을겁니다. 저도 접해보긴 전에는 무슨 마술사의 주술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20살무렵 처음 접했을때 비어있음의 충만, 저높은 곳으로 가자는 마지막구절(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지식을 모두 버리고... 그 당시의 가장큰 오독은 내적으로 지금보다 성숙하지 못한 시절에, 이 경전의 취지와는 반대로 사회적으로 소유하지 못한것으로 인한 반감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됩니다(위안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처음 본것은 불자수첩에 깨알만한 글씨의 한자와 아래에 한글이 달린것이었는데 나중에 라즈니쉬 강의본을 읽었을때(반야심경, 라즈니쉬 석지현 번역,일지사 1982년 초판) 아주 절정에달해 제대하면 속세를 떨치고 해탈하러 가야겠다는 생각..